백기철

논설위원

소설가 한강은 기고에서 시민들의 심정을 잘 대변했다. “우리는 촛불이라는 평화 수단으로 사회를 바꾸길 원했습니다. 그걸 현실로 만든 사람들은 이제 미래로 가기 위해 매일 카페와 병원, 학교의 문을 엽니다. 누가 이들에게 평화 말고 다른 시나리오를 말할 수 있나요?”

최근 <뉴욕 타임스>에 북핵 관련 기고를 한 소설가 한강.
최근 에 북핵 관련 기고를 한 소설가 한강.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위기의 본질은 오히려 명확하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말폭탄에 시민은 없다. 거기에는 군대와 기업, 위정자의 이해가 있을 뿐이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고달프게 이어지는 우리 일상은 위기가 깊을수록 더욱 값지다.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다시 평화의 촛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겨울 촛불은 보다 온전한 일상, 평화로운 일상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 그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 공동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시민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듯 평화로운 나라, 평화로운 한반도를 외쳐야 한다. 그렇게 촛불 국가의 위엄을 세워야 한다.

촛불은 광장에서만 타오르진 않는다. 일상에서, 마음속에서도 타오른다. 박근혜에게 하야를 외쳤듯 지금은 김정은, 트럼프에게 평화를 외칠 때다. 글이든, 노래든, 인간띠든 무엇으로든 뜻을 알리면 된다.

촛불을 든다면 무엇보다 김정은에게 민족의 안녕을 위협하는 전쟁 행위를 멈추라고 해야 한다. 북한이 직면한 존망의 위기는 김씨 3부자를 정점으로 한 체제의 실패 탓이다.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빛바랜 수령론과 핵무기 몇개로 위기를 버티려 들지만, 김정은에게 남과 북을 핵전쟁에 몰아넣을 권능은 없다. 이제 남쪽 시민들이 북의 반평화, 반인권 행태를 분명히 짚어야 한다.

트럼프에게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해야 한다. 그 미치광이 소용돌이의 첫 희생양이 한국이 될 순 없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 의지를 보이는 건 좋지만, 전쟁을 통해서라면 결단코 반대다. 세계 전략과 미국 우선주의에만 골몰하는 트럼프에게 우리 뜻을 보여야 한다.

북핵 문제가 위중하니 시민의 집단지성에 맡기자는 건 반만 맞다. 민주주의는 직접 참여와 대의제가 혼용된다. 특히 북핵처럼 고도의 외교 사안은 당국자들이 틀어쥐어야 한다. 언젠가는 발현될 시민의 집단지성을 믿되, 당국자들은 죽기 살기로 타개책을 찾아야 한다.

여태껏 북핵 타결 국면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있었다. 디제이 때도 노무현 때도 그랬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그냥 오지 않는다. 우리 당국자들의 피와 땀이 배어 페리 프로세스,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보수는 이를 퍼주기의 실패라고 한다. 하지만, 퍼주기 적폐가 있다면 대미추종 적폐, 전쟁불사 적폐도 있다. 사흘만 전쟁하면 통일 된다며 밀어붙였지만 북핵을 키우기만 했다. 지난 9년간 대결정책이 도대체 무얼 해낸 건가. 오바마 8년의 북한 무시 정책에 편승해 대결만 계속해왔다. 10년 더 압박하면 북핵이 해결되나? 진짜 전쟁 날 때까지 밀어붙이면 해결되나? 지금 보수가 문재인 정부더러 압박을 말할 계제는 아니다.

우물 안에서 너는 틀렸네, 나는 옳네 하며 공멸의 위기를 불러들이진 말자. 지금은 모두 머리를 맞대도 될까말까한 상황이다. 나라와 민족의 안녕을 위해 우리가 못할 게 뭔가. 더한 퍼주기, 더한 밀어붙이기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위정자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북핵 대처를 위한 대모색, 대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아무래도 시민이 나서야 할 것 같다.

kcbaek@hani.co.kr